김제장 (2, 7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김제장 (2, 7일)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김제장 (2, 7일)

김제장 (2, 7일)

778.9M    12105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요촌중길 50
063-540-3616

김제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장이 형성되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현재는 전문백화점 등에 밀려 서민들의 장이 쇠퇴하고 있으나 장날에는 많은 인파가 북적대며 활기를 띤다.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비 오는 날에도 편하게 장을 보기 편하다.

김제향교

김제향교

779.2M    1670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3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1404년(태종 4)에 창건되었다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1635년(인조 13)에 중건하였으며, 그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만화루, 교직사, 내삼문 등이 있다. 김제향교는 유생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석전대제를 알아보고 악(樂)을 배우는 시간으로 해금 강의가 있다.

벽성서원

788.6M    1545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16

김제시 교동에 있는 벽성 서원은 1965년에 김해 김씨 종친들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에 강당이 있으며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낸다. 이곳에는 신라 김유신을 주벽으로 고운 최치원, 죽강 김보, 도산 김선, 모암 김극일(慕庵 金克一), 숙재 허주, 점필재 김종직, 안경공 김영정, 탁영 김일손, 갑봉 김우항(甲捧 金宇杭) 등을 배향했다. 벽성 서원은 외삼문인 어덕문(御德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구조의 강당, 내삼문인 경의문(敬義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사당 충인묘(忠仁廟)로 구성되어 있다.

용암서원(김제)

830.6M    15540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22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용암서원은 김제시 교동 성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우측에는 김제향교가 있다. 조간을 주벽으로 하여 이계맹, 나안세, 윤추, 이세필, 나응삼, 조윤침 등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1488년(성종 19)에 세워졌으나 불에 타 없어지고, 1575년(선조 8)에 다시 지었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소실되어 1612년(광해군 4) 성산 동쪽 기슭으로 이건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11년 김제 유림에 의해 다시 복구되었다. 용암서원의 입구문은 훼손되어 2004년 새로 만들어졌다. 용암서원은 사당과 강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고,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김제문화원

김제문화원

849.1M    15975     2024-09-12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서암5길 5 (서암동)

도작문화의 발상지인 김제는 농경문화가 꽃을 활짝 피웠던 고장이다. 국내 최고최대를 자랑하는 벽골제로 인하여 생활이 넉넉하여 글 읽고 글쓰기를 즐긴 문화예술의 고장이자 충효의 고장이다. 또한 천년의 고찰을 자랑하는 금산사를 비롯하여 많은 유적 유물이 분포되어 있으며,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으로 징게맹갱외에밋들(김제 만경 넓은 들)에 너른 들로 인해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전국 유일한 문화 도시이다. 이러한 곳에 위치한 김제문화원은 1966년 10월에 개원하였다. 김제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지역문화의 맥을 잇는 것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김제문화원에서는 주민들이 김제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쉽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예의 교육 및 새로운 문화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콩사랑뚜부장수

876.1M    13657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요촌중4길 47-11
063-542-9828

콩사랑뚜부장수는 전북 김제시에 위치하였으며 노화 방지, 고혈압, 치매, 심장질환 예방, 골다공증, 다이어트 등에 좋다는 우리 콩을 재료로 한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특히 여름철에 고소한 콩 국물과 쫄깃한 면발의 조화가 환상적인 콩국수를 맛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이 외에도 청국장, 두부버섯전골, 두부 탕수육 등 정갈하고 건강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성산공원

성산공원

896.3M    17520     2024-09-13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16

성산공원은 김제시 도심에 있는 성산에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김제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 및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공원이다. 공원 안의 교동 성산성지는 누가 언제 어떻게 쌓았는지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제시대에 김제의 주성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남·서·북쪽에 토성으로 쌓은 흔적만 남아 있다. 성산공원에 설치된 체육 시설로는 모래씨름판, 등허리 지압기, 온몸 노젓기, 하늘 걷기, 평행봉, 허리돌기대, 철봉대, 팔굽혀펴기대, 윗몸일으키기 운동대, 배드민턴 코트 2곳 등이 있으며 쉼터, 지압보도블록,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성산타워 1층에는 매점과 휴식 공간이 있고, 2층은 김제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3층은 예전에 레스토랑으로 이용하다 현재는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이밖에도 성산공원 안에는 충혼탑, 반공희생자 위령비, 이상운 학생 순의비, 서해안 방조제 순직비, 반공투사 고(故) 최주일 추모비 등 다양한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또한 최학규 선생 시비를 비롯한 우란회 시비 등이 세워져 있다.

대흥각

대흥각

1.4Km    1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검산택지1길 29

전라북도 김제 시내에 있는 중식당으로 백종원의 3대천왕, KBS 2TV 생생정보에 소개된 맛집이다. 돼지고기로 낸 진한 육수에 고추로 매운맛을 더한 고추짬뽕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또한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육미 짜장도 대표 메뉴 중 하나다. 고추짬뽕과 육미 짜장 두 메뉴 모두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게 특징이다. 주차장을 갖추고 있으며 단체석도 마련되어 있다. 문화체육공원, 레포츠공원 등이 주변에 있어 연계 관광하기 수월하다.

맷돌순두부

1.7Km    4414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복죽로 585
063-546-4604

버섯순두부찌개는 옛날 방식으로 직접 맷돌에 콩을 갈아 만든 순두부에 여러 가지 버섯을 넣고 다른 순두부찌개와는 다르게 부추와 들깨를 갈아 뿌려져 나온다. 식사 시간이면 자리가 없어 기다릴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남쪽 지방의 젓갈로 막 담근 겉절이와 간장으로 간을 한 채소 겉절이를 함께 먹는다.

대제복구비

대제복구비

1.9Km    15165     2024-09-12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후신길 4-27

김제시 연정동에 위치한 대제복구비는 1848년(헌종 14) 7월에 세운 것으로 김제군 내에서 가장 컸다는 대제저수지를 복구한 사람들에 대한 공적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대제를 복구할 당시의 총위사, 전라도관찰사, 어사 그리고 김제군수 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건립했다는 연유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피 흘리는 비’는 대제복구비가 피를 흘린다는 비석전설이다. 1848년(헌종 14) 7월 대제를 복구하는 일이 있었을 때 대제복구비가 서 있던 뒤쪽에는 허름한 초가 한 채가 있었는데, 어느 해 이 초가집의 주인이 집을 고치게 되었다. 그때 자기 땅에 서 있던 대제복구비를 울안에 넣고 담을 둘러쳤다. 그런데 담을 치며 마지막 벽돌을 올려놓는 순간에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더니 대제복구비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우물에서도 핏빛과 같은 녹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로 퍼졌으며, 사람들은 대제복구비 근처에 가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는데, 대제복구비가 서 있는 앞 도로에서 원인 모를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집주인은 대제복구비가 저주를 내린 것이라 생각하고 도로 담을 헐었다. 그 후로는 비에서 흐르던 피도 멎게 되었고, 우물에서 나오던 녹물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도 가끔 피를 흘릴 때가 있는데, 비에서 피가 흐르면 으레 비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왜 이 비석이 피를 흘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사연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