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반남 고분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나주 반남 고분군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나주 반남 고분군

나주 반남 고분군

11.9Km    24981     2024-05-31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영산강 하구가 둑에 막히면서 자연산 장어가 거의 잡히지 않지만, 영산강의 열두 구비 중 아홉 번째 구비라 하여 이름 붙여진 나주의 구진포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이어서 예로부터 장어가 유명하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뛰어나다. 현재는 구진포 삼거리를 중심으로 7~8곳의 장어집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1940년대에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이곳만의 조리법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 구진포는 영산강 물길이 구부러지는 곳에 있는 나루라 해서 ‘구부나루’라 불렸고 예전에는 영산강의 물이 앙암바위를 돌아 이곳에서 모여 다시 굽이친다 해서 회진포라고 불렀다. 차량 이동 약 10분, 4.2km 거리에 영산강 황포돛배 나루터와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나주 반남 고분군은 삼국시대의 고분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음으로 발굴되어 세상에 알려진 이 고분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옹관과 함께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최고 권력자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옹관고분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달리 영산강 유역에만 분포하던 독특한 묘제이다. 초기의 옹관고분은 지면을 파고 옹을 반쯤 안치한 후 그 위에 낮은 분구를 쌓았으나 후대에는 분구를 쌓은 후 정상부에 흙을 되파고 옹관을 안치하였고 분구의 규모도 커진다. 이처럼 옹관을 묘제로 사용하는 형식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며,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부터 묘제의 일부로 사용하던 것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옹관고분처럼 대형 전용 옹관을 사용한 예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토착세력에 의해 완성된 묘제로 이해되고 있다. 대안리 일대에는 12기가 분포하는데 제9호 분은 대안리 고분군 중 최대 규모이며 9기의 옹관과 함께 금반지, 큰칼, 구리팔찌, 유리구슬, 토기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신촌리 일대에는 9기가 분포하는데 일제강점기에 9호 분 등 고분 일부가 발굴되었으며 이때 금동관(국보)을 비롯한 금동신발, 금반지,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구리팔찌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1999년 신촌리 9호 분을 재발굴 조사한 결과, 고분 정상부를 두르며 장식한 원통형 토기 32개가 출토되었다. 원통형 토기는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라는 유물과 같은 성격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교류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덕산리 일대에는 14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으며 중심 축조 연대는 신촌리, 대안리와 유사한 5세기 중엽~후반 경으로 판단된다. 반남 고분군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10호 분은 석실분으로 6세기 중엽 이후 백제 세력이 진출하면서 토착세력의 옹관묘가 소멸되는 과정에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인근의 국립나주박물관을 함께 방문하는 것도 좋다.

불회사(나주)

11.9Km    23079     2024-05-14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1224-142

불회사는 백양사의 말사로, 운흥사터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덕룡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동진 태화 원년(366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창건되었고 희연조사 2창, 조선 태종 2년(1402) 원진국사가 3창하고, 정조 22년(1789) 큰 화재로 건물이 대부분 불타버린 것을 1800년 중건하였다. 불회사라는 이름은 부처님의 회상이란 의미로, 불법승 삼보가 어우러져 부처님의 가르침이 끊이지 않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불회사는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은 없지만, 호젓한 분위기로 사람을 붙잡는다. 대웅전(국가 보물)과 명부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가 동백숲을 뒤에 두르고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으며 단풍이 가장 늦게 드는 지역으로 그 빛깔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다. 대웅전에 안치된 삼존불 중 비로자나불은 종이로 만든 지불로 유명하다. 절 입구에는 숙종 45년(1719)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신상인 석장승 한쌍이 서 있다. 할아버지 장승은 툭 튀어 나온 퉁방울눈을 하고, 이맛살을 굵게 찌푸려 남도 특유의 해학적 표정을 짓고 있다. 할머니 장승은 절을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듯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 다정다감한 할머니의 표정 그대로이다. 할아버지 장승의 키는 2.3미터, 할머니 장승은 1.7미터이다. 불회사의 녹차는 1600년 전 삼한에 처음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스님께서 이곳 덕룡산에 오시어 불회사를 창건하고 차씨를 들여와 시배되었다. 차나무가 옛 모습 그대로 비자나무 아래에 자라고 있고, 자연 그대로의 찻잎으로 만들어지는 그 차의 이름을 비로다(榧露茶)라 하였다. 비로다는 덕룡산에서 옛날부터 자생하는 찻잎을 채취하여 선배 스님들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적 제다법, 즉 아홉 번 덖어 만드는 방법을 그대로 지키며 만들고 있다.

들소리캠핑장

들소리캠핑장

11.9Km    0     2024-07-29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들소리로 384-14

영암들소리키즈글램핑은 영산강 쪽 나주평야 끝자락에 있다. 영암보다는 영산포가 더 가까운 거리다.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구비하고 있는 키즈 글램핑시설로 주변에서는 단연 최고의 인기 캠핑장이다. 실내 어린이 놀이터와 에어바운스, 레일 썰매장을 비롯해 자전거, 슬라이드수영장, 풍선워터힐, 워킹말타기 등의 시설이 있고, 금붕어잡기, 닭과 토끼 모이주기, 메론수확, 카트전동차 타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체험프로그램도 계절별로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캠핑장이 있는 지역은 나주평야를 중심으로 영산강 유역에서 불리던 농요, 즉 '들소리'의 시원이 되는 곳이다.

꽃과 나무가 반기는 길

꽃과 나무가 반기는 길

12.0Km    2455     2023-08-10

꽃과 나무를 실컷 보려거든 장흥으로 떠나자. 배롱나무 군락부터 편백숲까지, 두 눈이 시원해지는 자연과의 데이트다.

영암 왕인박사마을

영암 왕인박사마을

12.0Km    42064     2024-05-23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구림로 43-14

남한의 금강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영암왕인박사 권역은 2200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로 일본에 한자와 유학을 전한 왕인박사와 풍수지리설의 시조인 도선 국사 탄생지이며 전통기와집과 오래된 정자들, 정겨운 흙담 등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과도 같다. 권역 내 구림마을에는 450여 년 동안 구림대동계가 존속되어 오고 있고 마을중심에 자리한 시유도기의 발상지 영암도기문화센터에는 다양한 전시관광 체험공방이 있어 관광객이 직접 교육을 병행한 도예체험을 할 수 있다. 남도관광의 명소인 이곳 영암 왕인박사 권역에서는 주민들(왕인촌)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100여 채의 한옥 민박집마다 독특한 개별체험프로그램이 있어 여느 체험마을과는 사뭇 다르다. 월출산국립공원과 왕인박사유적지, 도기문화센터 등 주변관광지와 왕인촌 주민자치회가 네트워크화되어 전통 및 향토문화 웰빙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이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이며 우리나라 체험관광 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마을로 손꼽을 만하다. <출처 : 영암 왕인박사마을 홈페이지>

영암내동리쌍무덤

12.1Km    16340     2024-06-17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내동리쌍무덤은 영산강 하류에 있는 내동리 서쪽의 구릉 중간부에 있다.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표상에 드러난 고분의 외형과 규모를 통해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지점으로 확인되었다. 1호분과 2호분은 봉토가 거의 맞닿아 있는데 그 사이에 오솔길이 나 있다. 1호분은 가장 큰 분구를 가지고 있는데 봉분의 규모가 56m나 되는 긴 타원형을 이루고, 2호분은 방형 또는 원형이다. 3호분은 1호분과 동쪽으로 인접해 있는데 1호분과 2호분에 비해 규모가 작다. 이 고분군은 본래 4기였으나, 4호분은 민묘(民墓) 조성으로 훼손되고 3기만 남아 있다. 쌍무덤은 1호분과 2호분을 통칭하는 것으로 구릉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쌍무덤을 마을주민들은 풍수지리적인 면에서 [매화낙지(梅花落地)]라고도 부른다. 내동리쌍무덤에 대한 성격과 구조는 정식 학술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인근에 있는 초분골고분의 발굴 조사로 봉토 내에 독무덤이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마한 시기의 지배 계급 무덤으로 생각되며 내동리쌍무덤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기동국민관광지

성기동국민관광지

12.1Km    22819     2024-09-13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왕인로 440

성기동국민관광지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에 있는 관광 시설이다. 성기동은 백제 때부터 형성된 마을이다. 백제 때 왕인(王仁) 박사(博士), 통일 신라의 때의 도선 국사(道詵國師), 형미 선사(逈微禪師), 경보 선사(慶甫禪師), 고려 시대의 최지몽(崔知夢), 조선 시대의 수미 왕사(守眉王師) 등 성현들이 태어난 곳이다. 관광 자원의 개발을 통한 국민 관광지의 저변 확대를 위해 각 도별로 대상 지역을 확정하였으며, 왕인 박사의 전설이 서려 있는 성기동을 1986년 6월 23일 성기동 국민 관광지로 개발하였다. 관광지 내에는 왕인 박사 유적지와 함께 탄생지, 문산재, 양사재, 돌정 고개, 상대포, 회사정 등 왕인 박사 관련 관광 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또 인근에는 월출산 국립공원의 구정봉, 천황봉, 구름다리, 칠치 폭포, 천황사, 도갑사 등 관광 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성기동 국민 관광지는 현재 왕인 박사 유적지에 포함되어, 왕인 박사 유적지에서 같이 관리하고 있다. 1996년 3월 12일 성기동 국민 관광지에서 제1회 영암 왕인 문화 축제가 시작된 이래 매년 계속되고 있다. 매년 4월이면 왕인 문화 축제와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월인당

월인당

12.1Km    8286     2024-08-05

전라남도 영암군 모정1길 37-11
061-471-7675

전라남도 영암군 모정행복마을에 자리한 월인당은 사시사철 보름달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대청, 구들장, 누마루, 친환경 황토벽으로 전통 한옥의 멋을 살렸다. 누마루에서 차와 식사를 할 수 있고, 아궁이에서는 고구마를 굽거나 바비큐를 할 수 있다. 다도, 천연염색, 팥칼국수 만들기 체험 등을 진행하고, 넓은 잔디마당에서 공놀이, 배구 등 야외 놀이도 즐기기 좋다. 이색적인 동네 골목길 벽화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죽정서원

12.2Km    3333     2023-06-15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죽정서원길 19

1683년 박권(朴權, 1465~1506년)과 박규정(朴奎精, 1493~1580년), 1726년에 이만성(李晩成, 1659~1722년)이 추가 배향되었다. 이후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1년 지방유림들에 의하여 복설되면서 박승원(朴承源, 1573~1640년)을 추가 배향하여 총 5위를 제향하고 있다. 서원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사우, 내삼문인 소원문, 강당인 강례당, 간죽정, 화수정, 조양재영당, 조양재영당사적비, 죽정서원 중건사적비, 외삼문, 간죽정 연혁비, 고직사 등이 들어서 있다. 박성건은 호가 오한 (五恨)이고 나주에서 태어났다. 이후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기주관, 장수현감 등 여러 벼슬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말년에는 벼슬을 내놓고 영암군 구림에 내려와 간죽정(間竹亭)을 짓고 후손의 교육과 향촌의 교화에 힘썼다. 국문학사상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경기체가 <금성별곡(錦城別曲)>을 지었다.

왕인박사유적지

왕인박사유적지

12.2Km    48887     2024-05-27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왕인로 440

왕인박사는 백제 근초고왕 때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의 선진문화를 전파하여 일본의 문화 시조로 숭상받는 인물이다. 왕인박사유적지는 구림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왕인묘, 내삼문, 외삼문, 문산재, 양사재, 전시관, 왕인상, 책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왕인묘에는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왕인이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곳으로, 월출산 서쪽 산 중턱에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책굴은 왕인이 학문을 수련할 때 쓰던 석굴이다. 전시관에는 탄생도, 수학도, 도일도(渡日圖), 학문전수도 등이 걸려 있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왕인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성기동 서쪽에 있는 돌정고개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정든 고향을 뒤돌아 보았다 하여 돌정고개가 되었다 한다. 봄이 되면 왕인박사 유적지는 벚꽃 나들이 명소로 유명하다. * 일본에 백제문화를 전수한 인물, 왕인박사 * 왕인박사는 백제인으로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빙으로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백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일본 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는 화이길사(和邇吉師), 일본서기에는 왕인이라고 그의 이름이 나타나있다.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것은 물론 기술공예의 전수, 일본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함으로써 일본 황실의 스승이며 정치고문이 되어 백제문화의 전수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을 계몽한 일본문화사상(日本文化史上)의 성인(聖人)으로 일본 비조문화(飛鳥文化)의 원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