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해물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원해물찜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경원해물찜

경원해물찜

0m    1     2024-03-27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칠성안1길 25

군산 산북동에 있는 경원해물찜은 양이 푸짐하고 해산물이 가득한 해물찜, 아귀찜 전문 요리점이다. 해물찜은 다른 곳과 비교하여 가격이 저렴하고 갑오징어, 소라, 전복 등의 해산물이 싱싱하고 크기가 크다. 특히 해물찜 속 갑오징어는 통통한데도 얇은 오징어보다 부드러우며, 전복도 쫄깃하고 부드럽다. 해물찜 식사 후에는 남은 양념과 함께 볶은 볶음밥이 인기 있다. 이곳은 재료 소진으로 일찍 마감되기도 하니 방문 전 영업여부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금강습지생태공원

금강습지생태공원

10.1 Km    0     2024-04-17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

금강습지생태공원은 군산시가 금강호 관광지 조성계획의 목적으로 금강 수변을 끼고 조성한 넓은 공원이다. 공원은 갈대숲 산책로와 생태연못을 건너 다닐 수 있는 관람 덱, 수변 철새 탐방로 등을 갖추었으며, 공원 내의 작은 동산 정상에는 시원한 금강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공원입구에서는 자전거를 무료로 대여하니 하이킹을 해도 좋다. 한가운데에 자리한 철새 전망대는 공원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국내에서 철새 탐조 명당으로 손꼽히며, 11월이면 금강의 수면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배경으로 수백만 마리의 가창오리 군무가 펼쳐지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이외에도 큰고니, 개리,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쇠기러기, 재갈매기 등 다양한 철새를 억새, 갈대와 함께 구경할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여행객들에게 인기이다.

서천국민체육센터

서천국민체육센터

10.2 Km    1008     2023-09-26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마서로 400
041-950-4766

서천국민체육센터는 서천군민들의 건강한 체육 생활을 위해 실내체육관, 헬스장, 풋살장, 족구장, 게이트볼장 등의 시설을 두루 갖춘 군민들을 위한 시설이다. 시설 이용은 전화 및 방문 접수를 통해 이루어지며 개인 및 단체의 이용 시간은 2시간을 기준으로 한다. 사용료 납부 대상 시설은 실내, 실외(풋살장, 족구장)이다. 평일은 야간 이용 또한 가능하다.

최호장군유지

10.3 Km    24309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원발산길 33-2

최호장군유지는 조선 선조 때의 무신 최호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5년(1729)에 최호의 후손 최호선이 세웠으며, 최호의 아버지 최한정과 최호의 아들과 손자인 최몽란, 최효설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군산시 개정면 발사리에서 태어난 최호 장군은 무장으로서 여러 관직을 거치고 정유재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곳에는 최호 장군과 관련된 유품과 군산시 향토 문화유산인 삼인보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최호 장군 유지는 사당, 유물전시관,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당을 들어서면 전면에 [충의사]라는 현판이 걸린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글 뜻 그대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충신의 의로운 발자취를 느끼게 한다. 조선 시대 사당 건축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건축적 가치와 우리나라 및 지역에서 최호 장군이 갖는 중요한 의의를 높이 평가하여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예스모텔

10.5 Km    11     2024-03-06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가도안1길 61
063-464-6081

전북 군산시에 위치한 예스모텔(구 휴모텔)은 33km에 달하는 새만금방조제가 바로 앞에 있어 확트인 전망이 좋은 곳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넓은 주차장과 함께 모텔 건물이 바로 보이며, 건물은 고급스럽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객실은 온돌과 침대방이 다양한 크기로 마련되어 있으며, 더블침대뿐만 아니라 트윈침대도 갖춰져 있어 가족 및 비즈니스 방문객이 머물기에도 좋다. 객실 내부도 넓은 편이며 좋은 시설과 인테리어가 편안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해준다. 군산공항과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이 가까워 이동이 편리하며, 바로 앞으로 펼쳐진 새만금 방조제 위를 차량으로 달리며 환상적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정보제공자: 군산시청)

발산리육각부도

10.5 Km    24892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초등학교에 자리하고 있는 육각부도는 1903년 일제 강점기 대규모 농장의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불법으로 획득한 다른 석조 문화재와 함께 발산 초등학교 후원에 전시하였다. 육각부도의 출처나 어느 절터에서 가져온 것인지 알 수는 없으며 현재 발산리오층석탑 및 석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75㎝로, 육각의 2단 받침돌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올린 형태이다. 육각의 탑신 2면에는 문(門) 형태를 새겼고, 4면에는 사천왕상이 희미하게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 승탑은 보기 드문 6각의 승탑이라는 점과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는 데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10.5 Km    25230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오층석탑은 현재 군산시 개정면 발산 초등학교 건물 후원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거리 봉림사 터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대규모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자신이 소유한 농장 사무실이었던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였으나 지금은 탑신의 한 층이 없어지고 4층까지만 남아있다. 발산리 오층석탑은 2층의 높은 기단에서 신라 탑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고려 시대 탑으로 전라북도 지역의 석탑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탑이라고 할 수 있다. 고고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있는가 하면 봉림사 터에서 석탑이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당시 군산 지역 문화재 침탈이라는 가슴 아픈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군산역사문화탐방 시간여행

군산역사문화탐방 시간여행

10.5 Km    3719     2024-01-18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군산. 군산을 여행하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일제강점기 시대의 거리에 들어선 착각이 일 정도로 거리나 건물, 철길에 그 흔적들이 생생하게 흐르고 있다. 힘들었던 시절에 맞서 꿋꿋이 삶의 터전을 이어온 군산 사람들의 현재는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군산 발산리 석등

군산 발산리 석등

10.6 Km    2406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석등은 고려초기 작품이며 높이는 2.5m 로 기둥돌의 용무늬 조각이 특징이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서 일제강점기 때 시마타니가 반출하였다. 현재 위치는 발산초등학교 건물 뒤편의 정원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발산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1900년대 일본인 농장주 시미타니의 집과 농장이 있던 곳으로 그 당시 일본인 농장주가 수집했던 문화유적이 다량 보존되어 있었다. 하대석에는 8장의 연화복련(연꽃잎 2장이 겹쳐진 모습)이 새겨져 있고, 간주석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용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기둥돌에 용이 새겨진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작품이다. 또한 지대석은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10.7 Km    25943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53-5

시마타니금고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을 불법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이 건물은 시마티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건물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은 쇠창살과 철판으로 이중 장금 장치가 되어 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온 자인데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마타니 독은 해방 후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군정청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다른 일본인이 떠난 후에도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그는 군산의 마지막 일본인 농장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 그도 미군정청의 강제적 권유로 손가방 2개만을 지닌 채 부산항에서 마지박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된 건물이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다. 출입문은 USA마크가 선명한 문을 달아 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금고의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