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이앙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카페이앙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카페이앙

카페이앙

14.3Km    0     2024-07-02

충청남도 예산군 예당관광로 146

카페이앙은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후사리 소재 예당관광지 내에 있다.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있어 모임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크루아상 크로플, 바닐라아이스크림, 노르웨이 전통 치즈 등이 어우러진 브라운 치즈 크로플이다. 국산 흑임자 크림이 올라간 달콤한 이앙커피도 인기가 많다. 이 밖에 아메리카노 등 여러 가지 음료와 인절미 크로플 등 각종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다. 예산수덕사IC에서 가깝고, 주변에 봉수산수목원과 예당호중앙생태공원이 있다.

대흥향교

14.4Km    17250     2023-12-05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교촌향교길 88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대흥향교는 예산 예당저수지, 대흥슬로시티 인근에 위치한 향교이다. 이 향교는 1405년(태종 5)에 지금보다 약 50m 북쪽에 처음 들어섰다가 1591년(선조 24)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 및 보수와 시대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내부에는 명륜당, 대성전, 동재, 서재, 수직사, 전교실 등의 건물이 남아있다. 1997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향교 앞에는 수령 500여 년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는데, 특이하게도 약 150년 전부터 중간 부분에서 느티나무가 자라 한 몸이 되었다. 향교를 굽어보는 이 나무에서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가 열린다. 주변에는 예당저수지(예당관광지), 대흥슬로시티 외에 예당호중앙생태공원, 의좋은형제공원, 봉수산, 봉수산자연휴양림, 봉수산수목원, 임존성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느린호수길

느린호수길

14.4Km    0     2024-07-30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예당호를 따라 2019년 10월에 조성한 느린호수길은 예당호 출렁다리에서 예당호 중앙생태공원까지 데크로드로 이어진다. 총 5.2km이며, 이곳을 걸으며 일상을 비우고 여유를 채우며 느림의 미학을 온전하게 경험할 수 있다. 물 위를 걷는 부잔교와 호젓한 수변산책로를 따라 수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걸으며 마음이 저절로 평온해진다. 코스를 왕복하면 ‘하루 2만보 걷기’로 건강과 활력도 되찾을 수 있다.

예당호 출렁다리(음악분수)

예당호 출렁다리(음악분수)

14.4Km    4     2024-08-22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예당관광로 161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호에 위치한 예당호 출렁다리는 예산군의 새로운 대표 관광지 중 하나로 402m의 길이를 자랑하고 있다. 하늘로 곧게 솟은 64m 주탑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펼쳐진 케이블은 아름다운 자태의 거대한 황새가 길고 흰 날개를 펼쳐 호수 위를 비상하듯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음악 분수는 길이 96m, 폭 16m, 최대 분사 높이 110m에 다다르는 부력식 분수이며, 그라데이션 기법을 적용한 형형색색 LED 불빛을 이용한 공연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출렁다리 주변에는 야영장, 공연장, 족구장 등 각종 부대시설이 있으며, 조각공원과 저수지 경관을 즐기며 거닐 수 있는 산책로가 있어 많은 관광객에게 주목받고 있다.

화암사(예산)

14.4Km    19381     2023-03-13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1길 21-29

예산의 화암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문인인 추사는 예산 사람으로서, 이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고색창연한 그의 생가, 추사고택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야트막한 오석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화암사는 추사나 그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절이다. 이 사찰을 중건한 김한신이 김정희의 증조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한신은 영조의 부마로서, 영조 임금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로 봉해졌는데, 이들 부부는 죽은 후에 용산 아래에 위치한 앵무봉에 합장되었다. 이처럼 살아 생전에 사찰과 맺은 인연이 죽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화암사는 가까이 가 보아도 사찰 입구에 위치한 정갈한 요사채에 의해 사찰이란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아주 오래된 고택의 편안함을 주는 요사채를 지나야 비로소 사찰에 들어서게 되는 데 곳곳에 추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요즘은 비구니 스님의 수도도량으로서 시골 사찰이 갖는 고즈넉함과 단정함까지 느낄 수 있다. 추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한번쯤 찾아가 보았으면 하는 그런 곳이다.

* 역사

옛 유래는 알 수 없고, 다만 삼국시대 절이었다고 전할 뿐이다. 절 뒤에 병풍바위가 있는데, 옛 절은 이 병풍바위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에 절이 없어지고,그 들에 조그만 탑이 남아 있었는데, 근래 현위치로 옮겨졌다. 화암사의 역사는 문헌을 전래되는 것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절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다 현재는 수덕사 유물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 되어 있어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중건기는 1848년(헌종 14)에 김명희(金命喜, 1788~?)가 짓고 김상희(金相喜)가 쓴 뒤 조석신(曹錫臣)이 새긴 것이다. 김명희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데,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 뛰어났다. 이 현판문의 내용으로 절의 역사를 알아보면, 처음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1752년(영조 28) 본관이 경주인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이 그의 아버지 김흥경(金興慶, 1667~1750)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절을 중건하였다.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남편으로서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는데, 사후에 부부가 용산 아래 앵무봉에 합장되면서 김한신 일가가 화암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뒤 1846년(헌종 12) 절이 허물어지며 퇴락되자 김명희가 여러 친지와 더불어 무량수각ㆍ요사ㆍ선실(禪室)ㆍ시경루(詩境樓)ㆍ창고 등을 지었다. 또한 옛 법당터에 약사암을 중건하고 삼존상을 봉안하였다.

이처럼 화암사는 조선 후기에 경주 김씨, 특히 김정희 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정희 유적지,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45호) 등 예산에는 본래 김정희 및 그의 일가와 관련된 유적이 많은데, 화암사 역시 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화암사의 북서쪽으로 약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약 100여평에 걸친 평평한 지대가 있는데 스님의 전언에 의하면 원 화엄사의 사역이 이 곳이었다고 한다. 약 100여평에 걸친 사지는 산사면을 깍아서 동남향으로 사찰을 조영했던 것으로 추저되나 사지의 가람을 추정할 만한 유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화암사의 원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원래 절 뒤에 병풍바위 앞에 있던 절이 폐사되고 탑만 남아 있던 것을 화순옹주의 부군인 월성위 김한신이 중건하고 영조가 화암사라 명명했다 한다. 즉 영조 임신년(A.D 1752) 영조의 부마인 월성위 김한신이 이절을 중건하였다.

『화암사』라는 절 이름은 영조가 명명한 것이고, 이 현판은 월성위가 쓴 것이다. 월성위는 화순옹주의 부군이고,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이니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가 된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따님이니,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이다. 이러한 가계관계가 후일, 김추사 일문이 왕권투쟁에 말려들어, 죄없이 파멸을 당하게 되는 연유가 된다. 월성위가 이 절을 중건한 95년 후, 헌종 병오년에 절이 또다시 훼손되어, 승려들이 기거할 수 없게 되자 김추사 일족이 출자하여 다시 중건하였다. 그 건물이 현재의 화암사이다.

면천창고카페

면천창고카페

14.5Km    2     2023-07-31

충청남도 당진시 군자길 16-1 면천농협창고

면천창고카페는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에 있다. 1970년에 지어진 면천농협의 창고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대표 메뉴는 곡물을 활용한 미숫가루와 생크림을 섞어 만든 면천크림커피다. 이 밖에 생 라임과 신선한 허브를 사용한 라임허브모히또, 매장에서 직접 찻잎을 끓여 만든 밀크티 등을 맛볼 수 있다. 면천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아미미술관, 아미산이 있어 연계 관광에 나서기 좋다.

추사김정희선생고택·묘

14.7Km    20028     2024-05-13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김정희 선생 고택 및 김정희묘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고증학자, 서예가, 역사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살던 집이자 묘소로 예산군 제3경으로도 선정되었다. 김정희는 북학파인 박제가(1750~1805)의 제자로 공부하여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을 연구했다. 24세에는 청나라로 유학을 가서 금석학과 서체 등을 배웠으며, 1816년(순조 16)에는 서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정체를 밝혀냈다. 1819년(순조 19)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대사성 등 여러 관직을 거치고 그만의 글씨체인 추사체를 완성하고 많은 미술 작품을 남겼다. 김정희 선생 고택은 건물 전체가 동서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데, 안채는 서쪽에 있고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은 동쪽에 따로 있다. 김정희묘는 고택에서 약 100m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는데,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외에도 추사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김정희 관련 유물 등을 둘러볼 수 있고, 추사체험관에서는 추사체 써보기, 난초, 세한도 그리기 및 색칠하기, 종이접기, 탁본 체험, 나비 부채 꾸미기, 원형부채 꾸미기 등과 같이 전통문화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예산 용궁리 백송

예산 용궁리 백송

14.8Km    18411     2024-07-30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산 73-28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인근에 위치한 예산 용궁리 백송은 김정희 선생이 조선 순조 9년(1809) 10월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중국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의 서울 본가에도 영조(재위 1724∼1776)가 내려 주신 백송이 있어 백송은 김정희 선생 일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백송은 나이가 약 2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둘레 4.77m이다. 줄기가 밑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두 가지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빈약한 모습이다. 나무껍질은 거칠고 흰색이 뚜렷하며, 주변의 어린 백송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예산의 백송은 희귀하고 오래된 소나무로써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관계와 당시 사람들이 백송을 귀하게 여겼던 풍습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골정 저수지

골정 저수지

14.8Km    3     2023-11-09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성상리

골정저수지는 골정지, 골정제라고도 불리며, 저수지 둘레를 따라 핀 벚꽃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저수지를 둘러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벚꽃이 피는 시즌에는 야간에 조명도 들어와 화려한 조명에 비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골정저수지 안에 작은 섬을 만들어 팔각 정자를 짓고 저수지에는 연꽃을 심었으며, 정자에서 밖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놓았다. 골정저수지는 면천면 소재지와 가까우며 지방도 70호선과 619호선을 이용해 접근할 수 있고, 고속도로는 당진대전고속도로 면천IC가 가깝다. 인근에는 면천읍성, 면천향교, 고려개국공신 복지겸 장군 유적지 등의 관광지가 있다.

월성위김한신묘

월성위김한신묘

14.8Km    16591     2024-07-25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근처에 있는 이 묘소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효공 김한신(1720~1758)의 묘이다. 1732년 13세 때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과 제용 감제 조를 역임하였다. 글씨를 잘 쓰고, 시문에 능하였던 그는 애책문(哀冊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썼으며, 도장을 새김에 있어서도 뛰어나 인보(印寶:임금의 도장)를 새기기도 하였다. 그가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화순옹주는 애도의 정이 극에 달하여 곧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났다. 현재 묘역에는 그와 화순옹주가 합장되어 있다. 이 일대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외에도 김정희묘, 화순옹주홍문, 예산 용궁리 백송 등 다른 볼거리도 있으며, 그 외에도 신리성지, 합덕성당, 합덕제수변공원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