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식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정원식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정원식탁

정원식탁

11.3 Km    1     2024-02-19

인천광역시 강화군 해안남로 309

정원식탁은 강화도 길상면 해안남로 소황산도와 동검도 사이에 있다. 매장 앞 주차장 공간이 넓어 차량으로 방문하기 편리하다. 이곳은 통영에서 올라오는 신선한 자연산 생물 돌문어를 전문으로 하는 덮밥 음식점이다. 돌문어 반 마리가 통째로 올라가는 돌문어 덮밥이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다. 실내 1층은 통유리로 되어 있으며 테이블은 4인석 8개가 있다. 메뉴는 차돌문어덮밥, 돌문어덮밥, 차돌박이덮밥, 돌문어물회, 수제등심돈가스, 새우튀김이다. 기본 반찬은 셀프 바에서 리필할 수 있다.

맷돌우리콩감자탕 본점

맷돌우리콩감자탕 본점

11.3 Km    0     2024-01-15

경기도 파주시 숲속노을로 330

맷돌우리콩감자탕은 경기도 파주 문발동에 있는 감자탕 전문점이다. 생방송 투데이, 맛있는 녀석들, 생생정보 등 다수의 TV프로그램에 감자탕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표 메뉴는 콩비지감자탕과 뼈해장국이 있고 어린이를 위한 다람쥐 돈까스도 있다. 경상북도 청송에서 부모님이 직접 생산하는 콩을 사용하고 의성에서 생산되는 육쪽마늘과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 토굴에서 숙성된 새우젓을 사용한다. 비지를 넣어 국물 맛이 고소하고 고기는 질기지 않고 연하다.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어도 별미다. 함께 나오는 무김치와 배추김치하고도 궁합이 잘 맞는다.

우농타조농장

우농타조농장

11.3 Km    31883     2023-08-31

경기도 파주시 교하로 595-41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에 위치한 '우농타조마을'은 아름답고 아담한 동물농장에서 동물과 농촌체험을 테마로 자연을 배우고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자연 학습공간이다.타조 및 양, 오리, 토끼, 거위 등 동물친구들에게 먹이주기 및 관찰 학습을 할 수 있으며, 타조 알 껍질 조각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어 나만의 목걸이를 만들고 아토피 진정, 피부 보습에 좋은 타조오일과 천연 재료를 쓴 수제 비누를 직접 제작해 볼 수 있다. 또, 일일 농부가 되어 고구마 수확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충렬사

11.3 Km    3645     2024-06-18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충렬사로 232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된 충렬사는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을 비롯한 충신 28명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돼 현충사라 불리다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의정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 원손을 수행해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게 되면서 현재는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절인의 넋을 달래고, 국가에 대한 충절을 장려한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충렬사는 국가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서원, 사우를페쇄할 때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존속되었다. 현재는 충렬사유지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렬사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는 없어지고, 지금까지 남은 건물로는 한식 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과 16평의 수직방, 14평의 전사청, 비각, 외삼문 등이 있으며 1977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길정 낚시터

11.3 Km    0     2024-05-20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고려왕릉로 209

길정저수지는 강화도 양도면에 위치한 497,000㎡ 규모의 저수지로, 가족 단위 여행의 장소이다. 저수지가 깔끔하고 인근 저수지 주변에 텐트를 치고 여가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수심이 깊어 항상 파란빛의 물을 만날 수 있는 넓은 저수지이다.

드리우니

드리우니

11.4 Km    1     2024-02-19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로 106

드리우니는 강화도 길상면 길상 119 안전센터 맞은편에 있는 디저트 카페다. 매장 앞에 주차장이 있어 차량 이용에 편리하다. 대궐 모양의 큰 한옥으로 대문부터 매장 입구까지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창가 쪽엔 주로 4인 테이블이 있고 중앙에 단체 손님을 위한 긴 테이블이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자리도 있고 외부 테라스도 마련되어 있다. 메뉴는 커피, 핸드메이드 티 앤 에이드, 드리우니 시그니처, 라테류 스무디류, 디저트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 메뉴는 대추차, 카스텔라 수제 찹쌀 경단, 드리우니 눈꽃 팥빙수, 인절미 앙버터 모나카이다.

한옥마을 박씨네추어탕

한옥마을 박씨네추어탕

11.4 Km    1     2024-02-16

경기도 김포시 걸포로192번길 23

한옥마을 박씨네추어탕은 김포 운양동에 있는 40년 전통의 추어탕 맛집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타이머가 부착된 1인 압력솥이 선반에 가득 걸려 있어 솥밥이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마솥밥은 김포 좋은 쌀에 강황, 쥐눈이 약콩 등을 넣은 영양이 가득한 밥이다. 메뉴는 우렁을 갈아 넣은 가마솥우렁추어탕과 매운탕,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돈가스가 있다. 기본 반찬으로는 깍두기, 나박김치, 배추김치, 미역줄기볶음, 추어튀김, 물만두 튀김이 나온다.

삼랑성(정족산성)

11.4 Km    31941     2024-06-14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삼랑성은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을 방어하는 성곽이었다. 둘레는 2.3km 정도이며, 성곽은 산 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능선까지 산의 지형을 따라 쌓아서 북쪽과 남쪽의 고도 차가 크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정족산의 한 봉우리씩 맡아서 쌓게 되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이 산성의 이름을 사내 랑(郞)을 써서 삼랑성이라 불렀으며, 강화도 남쪽 해발 222m의 정족산에 있어 정족산성으로도 불린다. 마니산 참성단과 더불어 단군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다. 성을 쌓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거친 자연 활석을 이용한 삼국시대 축성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1739년(영조 15)에 중수하면서 남문에 문루를 건립하고 종해루라 하였고, 1764년(영조 40)에 다시 성을 중수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양헌수 부대가 프랑스군을 물리친 승전지이다. 삼랑성 안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자 강화에서 제일 큰 절인 전등사가 있다.

종해루

11.4 Km    17436     2024-06-12

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전등사

종해루는 전등사 삼랑성의 남문에 있다. 전등사 삼랑성 남문인 종해루는 영조 15년(1739)에 유수 권교가 수축하고 종해루라는 현판을 걸었으며, 영조 40년(1764)에 중수하고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이 기문을 지었다고 한다. 1976년 남문을 중수하고 문루도 건립하였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전등산을 삼랑성이라고 부르며, 단군이 세 아들인 부여(夫餘)·부우(夫虞)·부소(夫蘇)을 시켜 쌓았다고 전해온다. 고려 고종 46년(1259) 이 성내에 궁궐을 지었으며, 조선 현종 원년(1660)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할 사고를 설치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에는 양헌수 장군이 이 성을 침입하는 프랑스 군을 격멸한 전승지이기도 하다. 성내에는 양헌수 장군의 전승비가 있다. 이성에는 원래 동, 서, 남, 북에 성문이 있었으나 문루가 없었던 것을 영조 15년(1739)에 남문에 무루를 건립하였다. 그간에 성곽과 문루가 무너졌던 것을 1976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오읍약수터

11.4 Km    4138     2023-03-13

인천광역시 강화군 북문길 110 오읍약수터

강화 산성 북문을 지나 숲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오읍(五泣) 약수터가 있다. 고려 고종때 북문 건축시 기우제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주었다는 약수이다. 몽골군대가 이 땅을 침략하였을 때 고려 고종은 강화도로 옮겨 끝까지 싸우고자 하였다.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1232년 2년간에 걸쳐 내성과 궁궐, 관아를 건축하였다. 북문을 건축하던 중 날이 가물어 갈증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고종은 북문 앞에 제단을 쌓고 기우제를 올렸는데, 하늘이 어둡기 시작하고 천둥이 쳤다고 한다. 바로 그때 벼락이 큰 바위에 떨어지며 물이 솟았는데 바로 지금의 약수다. 이에 제를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다섯오’에 ‘울 읍’자를 써 오읍(五泣)약수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