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골가든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남정골가든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남정골가든

남정골가든

5.7Km    0     2024-02-21

경기도 김포시 월하로 356

남정골가든은 김포 통진읍 외진 곳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불편할 수 있다.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시골 외갓집 같은 건물에 들어서면 룸과 홀로 구성된 실내가 제법 넓고 정감이 간다. 꽃게 전문점답게 꽃게탕을 비롯하여, 꽃게장, 꽃게무침, 돌게장을 선택하여 맛볼 수 있다. 이 식당의 게장은 맛집 명성답게 짜지 않고 게장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밑반찬도 다 맛있는데, 그중 강정 형태의 코다리 반찬은 쫀득쫀득하고 매콤달콤하다. 코다리 반찬은 추가할 경우에 별도의 비용을 받고 있다. 문수산산림욕장과 가깝다. ※ 반려동물 동반불가 (단, 안내견은 가능)

카페 시차

카페 시차

5.8Km    0     2024-07-30

경기도 김포시 대곶북로 379

카페시차는 김포 통진읍 마송아파트 단지 부근에 멋진 정원이 있는 대형 카페이다. 아름다운 연못과 넓은 잔디, 야외테라스가 있어 뷰가 아름답다. 곳곳에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 많으며, 정원처럼 예쁘게 꾸며져 있어 쾌적한 분위기로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시차카페는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 출신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 제공하여 커피 맛도 일품이다. 또한 20여 종의 베이커리는 최고급 밀가루와 버터를 사용하여 만들어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제공된다. ※ 반려동물 동반 가능(단, 목줄 착용과 배설물 처리를 구비한 이용객에 한함)

충렬사

5.8Km    3647     2024-06-18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충렬사로 232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된 충렬사는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을 비롯한 충신 28명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돼 현충사라 불리다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의정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 원손을 수행해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게 되면서 현재는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절인의 넋을 달래고, 국가에 대한 충절을 장려한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충렬사는 국가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서원, 사우를페쇄할 때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존속되었다. 현재는 충렬사유지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렬사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는 없어지고, 지금까지 남은 건물로는 한식 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과 16평의 수직방, 14평의 전사청, 비각, 외삼문 등이 있으며 1977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카페 두운리

카페 두운리

5.9Km    2     2024-06-05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불은북로 36-8

카페 두운리는 인천 강화도 두운리에 위치한 약 580평 규모의 대형 카페이다. 두운리는 ‘구름이 머무르는 자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카페는 모던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본관과 싱그러운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온실로 나뉘어 있어 취향에 맞게 좌석을 선택하여 앉을 수 있다. 주변 경관이 계절마다 변하는 다양한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아이와 함께 찾기 더욱 좋은 곳이며, 매일 갓 구운 맛있는 빵, 그리고 유니크한 디저트와 음료가 인기가 많다. 바쁜 일상 속 가족과 친구, 연인과 함께 잠시나마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 완벽한 공간이다.

연무당 옛터

연무당 옛터

5.9Km    26912     2024-05-23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강화산성 서문 건너편에 있는 연무당은 고종 7년(1870년) 강화유수부의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세워진 조련장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1876년 보초와 대포를 앞세운 일본군에 의해 강압적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됐다.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 조약이었으나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조약으로 우리나라는 부산, 인천, 원산을 일본에 개항하고 치외법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여 민족의 자주 의식을 고취하자는 의미에서 기적비를 세우고 보존하고 있다.

서암체육공원

5.9Km    0     2024-09-04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검암2로 55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에 있는 생활체육 공원이다. 2019년 6월 착공하여 2020년 공식 운영을 시작했다. 통진읍 서암리 주민들을 위한 생활 체육공원으로 부지면적은 약 48,000여㎡이며 테니스장 5면, 풋살장 2면, 족구장 3면, 게이트볼장 1면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든 주민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샤워장 등의 부대시설 마련되어 있어 운동 후 쾌적함까지 챙길 수 있다. 족구장, 풋살장 등 공원 내 시설은 김포 시청을 통해 대여 및 대관이 가능하다.

광성보

광성보

5.9Km    68860     2024-06-12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해안동로466번길 27

광성보는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로, 1658년에 설치됐다.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와 1874년에 축조된 오두정포대를 관할하였다. 1745년에는 성을 고쳐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어 ‘안해루(按海樓)’라 하였다.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초지진과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에 이른 미군은 상륙하기 전에 포격으로 광성보를 초토화했다. 이미 병인양요 때 광성보에 근무한 바 있던 어재연(魚在淵) 장군은 포격을 피할 안전한 장소에 군사들을 숨겼다가 상륙하는 미군에 맞서 싸웠다. 조선군은 물러서지 않고 분전했으나, 무기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했다.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어재연·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 장병들을 모신 신미순의총,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등이 있다.

오읍약수터

5.9Km    4138     2023-03-13

인천광역시 강화군 북문길 110 오읍약수터

강화 산성 북문을 지나 숲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오읍(五泣) 약수터가 있다. 고려 고종때 북문 건축시 기우제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주었다는 약수이다. 몽골군대가 이 땅을 침략하였을 때 고려 고종은 강화도로 옮겨 끝까지 싸우고자 하였다.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1232년 2년간에 걸쳐 내성과 궁궐, 관아를 건축하였다. 북문을 건축하던 중 날이 가물어 갈증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고종은 북문 앞에 제단을 쌓고 기우제를 올렸는데, 하늘이 어둡기 시작하고 천둥이 쳤다고 한다. 바로 그때 벼락이 큰 바위에 떨어지며 물이 솟았는데 바로 지금의 약수다. 이에 제를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다섯오’에 ‘울 읍’자를 써 오읍(五泣)약수라 불렀다고 한다.

강화문예회관

강화문예회관

5.9Km    24289     2024-08-20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고비고개로19번길 12

1991년 12월에 건립된 강화문예회관은 강화읍의 공설운동장 내에 있으며 연면적 4,056㎡에 지층, 지상 1층, 지상 3층으로 건립되었다.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각종 공식 행사는 물론 문화공연과 체육행사 등 꾸준히 개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문화의 집을 개관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 새로운 종합 문화공간으로서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대표적인 문화시설로 자리매김 중인 문예회관의 주요 시설을 살펴보면 지층에는 식당과 기계실이 있고 1층에는 수용인원 1,300명의 대공연장이 있으며 대규모 문화행사는 대공연장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6.0Km    24767     2024-08-22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강화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동락천 위에 설치하였던 수문이다. 조선 숙종 37년(1711)에 강화산성의 내성을 쌓을 때 연결하여 처음 설치하였으나, 광무 4년(1900)에 갑곶 나루터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개천 어구에 옮겼다. 그 뒤 1977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길이는 18.2m이고 높이는 2.7m, 너비는 4.7m이다.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3개이며, 화강암을 다듬어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