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충렬사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충렬사

3.6Km    3647     2024-06-18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충렬사로 232

인천시 문화재로 지정된 충렬사는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을 비롯한 충신 28명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돼 현충사라 불리다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의정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 원손을 수행해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게 되면서 현재는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절인의 넋을 달래고, 국가에 대한 충절을 장려한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충렬사는 국가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서원, 사우를페쇄할 때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존속되었다. 현재는 충렬사유지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렬사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는 없어지고, 지금까지 남은 건물로는 한식 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과 16평의 수직방, 14평의 전사청, 비각, 외삼문 등이 있으며 1977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강화유수부이방청

3.6Km    17229     2024-06-18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고려 고종 때 궁궐이 있었던 터에 있는 이 건물은 조선 중기 강화 유수부 6방(六房)중 하나인 이방청(吏房廳) 건물이다. 지방 행정 관아로 수령을 보좌하던 행정 실무자가 집무를 보던 곳이다. 이 건물은 한식 목조 단층 기와집으로 ㄷ자형인데, 온돌방이 8칸이고 우물마루로 된 청마루가 12칸이며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이다. 팔작지붕에 민도리 홑처마 양식으로 건평은 220㎡쯤 된다. 현재의 건물이 건립된 것은 효종 때로 유수 정세규(鄭世䂓)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정조 7년(1783)에 유수 김노진(金魯鎭)에 의해 내부가 수리되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희소식

희소식

3.7Km    0     2024-07-02

인천광역시 강화군 중앙로413번길 6 희소식

희소식은 인천 강화도 신원면 한적한 시골에 위치한 카페이다. 예쁜 정원이 꾸며져 있고, 이 정원에서 반려동물과 산책을 할 수 있다. 카페는 한옥을 리모델링한 형태로, 잘 꾸며진 시골집을 방문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실내 곳곳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고 야외 정자에도 테이블이 있다. 공간이 넓고 야외 자리도 넉넉해서 여유 있게 얘기를 나누거나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메뉴는 다양한 커피와 티, 라떼, 에이드, 디저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희소식의 시그니처 메뉴는 쑥스크림라떼와 쑥소프트아이스크림이다.

왕자정묵밥

왕자정묵밥

3.7Km    26133     2023-07-10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55
032-933-7807

왕자정은 묵 요리 전문점이다. 고려궁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라 사계절 내내 경관이 좋지만 특히 봄에는 벚꽃이 만개해 황홀함을 더해준다. 전체 수용인원은 130명 정도로 모두 온돌식 좌석이다. 대표 메뉴는 묵밥이다. 피자팬에 담겨 나오는 도토리전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이며 도토리무침 또한 맛있다.

연무당 옛터

연무당 옛터

3.7Km    26912     2024-05-23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강화산성 서문 건너편에 있는 연무당은 고종 7년(1870년) 강화유수부의 군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세워진 조련장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1876년 보초와 대포를 앞세운 일본군에 의해 강압적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됐다. 강화도조약은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 조약이었으나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조약으로 우리나라는 부산, 인천, 원산을 일본에 개항하고 치외법권을 인정하게 되었다. 당시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여 민족의 자주 의식을 고취하자는 의미에서 기적비를 세우고 보존하고 있다.

강화문예회관

강화문예회관

3.7Km    24289     2024-08-20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고비고개로19번길 12

1991년 12월에 건립된 강화문예회관은 강화읍의 공설운동장 내에 있으며 연면적 4,056㎡에 지층, 지상 1층, 지상 3층으로 건립되었다.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각종 공식 행사는 물론 문화공연과 체육행사 등 꾸준히 개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문화의 집을 개관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 새로운 종합 문화공간으로서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대표적인 문화시설로 자리매김 중인 문예회관의 주요 시설을 살펴보면 지층에는 식당과 기계실이 있고 1층에는 수용인원 1,300명의 대공연장이 있으며 대규모 문화행사는 대공연장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강화 석수문

강화 석수문

3.7Km    24767     2024-08-22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강화읍의 중심부를 흐르는 동락천 위에 설치하였던 수문이다. 조선 숙종 37년(1711)에 강화산성의 내성을 쌓을 때 연결하여 처음 설치하였으나, 광무 4년(1900)에 갑곶 나루터의 통로로 삼기 위하여 개천 어구에 옮겼다. 그 뒤 1977년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길이는 18.2m이고 높이는 2.7m, 너비는 4.7m이다.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3개이며, 화강암을 다듬어 쌓았다.

두부향

두부향

3.8Km    0     2024-02-27

경기도 김포시 김포대로 2759-1

두부향은 문수산성으로 가는 길 입구에 있는 두부 전문점이다. 두부 전문점답게 두부향 정식과 해물순두부로 메뉴도 간단하다. 이 식당은 100% 국내산 콩과 상황버섯 물을 이용해 두부를 만들며, 마른 콩을 즉석에서 갈아서 두부를 만들기 때문에 영양소 파괴가 적고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주방에서 차려진 정식 한 상을 그대로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방식으로 음식을 제공한다. 약수로 지은 돌솥밥, 순두부찌개, 불고기, 황태구이, 연두부, 두부김치, 단호박 튀김, 김치와 나물 등 다양한 반찬과 함께 한 상 푸짐하게 나온다. 오가는 길에 주변 문수산성과 문수산을 함께 들러도 좋다. ※ 반려동물 동반불가 (단, 안내견은 가능)

통진향교

3.9Km    17344     2024-04-29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로 288-21

통진향교는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에 있는 향교이며, 1983년 경기도의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통진향교는 1127년에 처음 지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통진은 [나루를 통한다]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에 한강 입구를 지키는 중요한 장소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있다. 현재 향교는 대성전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근대에 지어진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명륜당은 한국 전쟁 이후 새로 지어졌고, 1994년과 1995년에는 동재와 2층 누각인 풍화루를 각각 복원하였다. 건물 배치는 풍화루의 아래 통로를 거치면,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가 있으며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형식을 하고 있다. 통진향교의 대성전은 허가를 받지 않은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하며, 예약을 통한 체험활동이 가능하다. 예약을 위해서는 관리자 〔향교재단〕에 문의해야 한다.

오읍약수터

4.0Km    4138     2023-03-13

인천광역시 강화군 북문길 110 오읍약수터

강화 산성 북문을 지나 숲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오읍(五泣) 약수터가 있다. 고려 고종때 북문 건축시 기우제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주었다는 약수이다. 몽골군대가 이 땅을 침략하였을 때 고려 고종은 강화도로 옮겨 끝까지 싸우고자 하였다.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1232년 2년간에 걸쳐 내성과 궁궐, 관아를 건축하였다. 북문을 건축하던 중 날이 가물어 갈증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고종은 북문 앞에 제단을 쌓고 기우제를 올렸는데, 하늘이 어둡기 시작하고 천둥이 쳤다고 한다. 바로 그때 벼락이 큰 바위에 떨어지며 물이 솟았는데 바로 지금의 약수다. 이에 제를 지내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다섯오’에 ‘울 읍’자를 써 오읍(五泣)약수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