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산방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충주산방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충주산방

충주산방

18.6 Km    19678     2023-08-23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금강로 253
061-336-3851

전라남도 나주시 공산면 중포리 위치한 도자기 전문 판매장이다.

팔열부정각

18.7 Km    16264     2024-05-07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월야리

1975년 5월 22일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정유재란 때 정절을 지킨 여덟 명의 열부(烈婦)를 기리는 정각으로 조선시대인 1681년(숙종 7)에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고, 순절지인 묵방포(墨防浦)에는 순절비(殉節碑)가 세워졌다. 팔열부는 부군들이 왜군의 흉탄에 맞아 영광 삼서(森西:지금의 장성)에서 전사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영광 칠산 앞바다까지 피난하던 중 왜구의 추격을 받고 이곳에서 투신 자살했다. 여덟 열부는 정함일(鄭咸一)의 부인 이씨, 정경득(鄭慶得)의 부인 박씨, 정희득(鄭希得)의 부인 이씨, 정함일의 딸 정씨, 정운길(鄭雲吉)의 부인 오씨, 정주일(鄭主一)의 부인 이씨, 정절의 부인 김씨, 정호인(鄭好仁)의 부인 이씨 등이다. 정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집으로 익공계(翼工系)건축이며 사면이 벽체 없이 홍살로 둘러 있다. 현재 진주정씨 종중에서 맡아 관리하고 있다.

나주 이슬촌마을

19.0 Km    23699     2024-06-14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이슬촌길 119

금성산과 이어진 병풍산 자락 아래 이슬촌 마을은 근대문화유산 문화재 노안성당과 넓은 광장이(폐교운동장)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마을 불빛 경관을 조성하고 마을 주민이 행복한 산타 축제를 즐기는 마을이다. 친환경 농사로 건강한 먹거리와 농촌 수확 체험을 운영하며, ‘예술농부로 놀기’ 슬로건으로 마을주민 문화 예술 동아리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사람이 더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진입로 양편에 우렁이 농법 친환경 농사 단지 논이 펼쳐져 있으며, 감자 캐기, 땅콩 캐기, 벼 베고 탈곡, 인절미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슬촌은 마을 내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노안성당이 있고 마을 주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교우인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예부터 성탄 행사를 진행했던 주민들이 2007년 크리스마스 산타 축제를 자연스럽게 기획하고 개최하게 되었다. 2007년 1회를 시작으로 2016년 9회에 걸쳐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개최되었다. 노안성당 뒤편 작은재 큰재로 오르게 되는 병풍산은 숲 자원이 훼손되지 않은 생태 숲으로 자생하는 풍란이나 많은 숲 생물이 살아숨쉬고 있다. 이슬촌 마을에서는 병풍산 코스 안내 리본을 부착하여 지역 도시민들에게 힐링 코스로 안내하고 있다. 이슬촌 마을은 나주 ic 인접하여 접근성이 좋다.

함평예덕리고분군

함평예덕리고분군

19.0 Km    17051     2024-05-30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예덕리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고분군이 입지 해 있는 지형은 저평한 평지성의 구릉으로 이 일대에 많은 고분이 분포해 있다. 남쪽으로는 내부구조가 대형 옹관으로 추정되는 예덕리 만가촌 고분군(전라남도기념물 55)이 있고 서북쪽에는 1990년 발굴 조사되어 백제계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밝혀진 월계리 석계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이 고분군은 일명 왕무덤[王陵] 또는 8 장수무덤[將帥墳墓]으로 불리며 이 고분군을 모두 9기로 구분된다. 주민들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대형고분인 1호분과 2호분은 석실의 규모가 커서 석실 내에는 7∼8명이 함께 앉아 놀 수 있을 정도였다 한다. 특히, 1호분과 2호분의 봉토는 서로 연접되어 누에고치 모양의 표형고분으로 되어 주목되고 이 고분은 백제시대에 조성된 석실분으로 추정된다. 1991년 3월 도굴로 인하여 알려지게 되어 1991년 6월에 국립광주박물관의 긴급 수습으로 개배 100여 점, 굽다리접시 3점, 항아리 2점의 토기와 철기류, 철판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은 전방후원형 고분으로서는 내부 구조가 돌방으로 밝혀진 국내 최초의 고분이다. 일제 때 모두 도굴되었는데 어떤 유물이 나왔는지 알 수 없으나 1호분에서 놓치고 간 금귀걸이, 옥목걸이를 취득하여 팔았다는 전언이 있다. 2000년 10월 ‘전남지역 고분측량 보고서’(책임조사원 임영진 전남대교수)에 의하면 지금까지 2기의 고분으로 알려진 표산 1호분이 1기의 장고형 고분(전방후원형 고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신덕고분군의 구조와 형태 * 전방후원형 고분의 형태는 남북 장축이며 전방부가 북쪽을 향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길이 51m이며 후원부 직경은 30m, 전방부의 앞부분은 25m이다. 허리 너비는 폭은 19m이다. 높이는 후원부가 가장 높은데 자락에서 5m이며 전방부 정상은 4m, 허리부는 3.25m이다. 전방부는 앞이 팔자형으로 약간 벌어져 있으며 고분의 봉토상에는 40기의 민묘가 있다. 봉토의 축조상태는 완전한 성토분이다. 도굴 구덩이는 후원부의 서쪽 경사면에 있고 봉토 자락 가장자리로는 희미하게 도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한데 전방부의 정면과 서쪽자락 끝에는 도랑의 흔적을 볼 수 있다.돌방은 봉토의 장축방향과 직교하는 동서장축이며 널길을 서쪽에 두고 있다. 구조는 직사각형의 무덤방과 짧은 널길, 그리고 묘도(墓道)로 구성된 모자형의 돌방이다. 무덤방은 중앙에서 약간 북쪽에 치우쳐서 널받침[棺臺]이 마련되어 있고 이 위에는 관재의 일부가 남아 있다. 무덤방 4벽은 맞조림식으로 쌓았는데 아래에는 넓은 판석을 세우고 위에는 네모진 깬돌로 촘촘하게 쌓고 사이에는 작은 깬돌을 끼웠다. 천장은 2매의 판석으로 덮었으며 입구는 좌우 각 1매의 두꺼운 판석으로 세우고 그 위에 판석형의 괴석을 얹어 이마돌로 하였다. 입구를 문비석으로 막고 그 바깥으로는 막음돌을 쌓아 놓았다. 묘도는 팔자형으로 벌려서 쌓았으나 정연하지 않다. 막음돌(폐쇄석) 끝에는 다량의 토기를 두었고 묘도의 남벽 끝에 항아리 2점과 약간의 철기와 칠기의 흔적이 있다. 널방[玄室]은 북벽쪽이 약간 길다. 바닥은 깬돌로 고르게 깔아 편평하게 하였으며 천장과 4벽은 붉은 칠을 하였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연도 : 1992년 3월 9일 종류 : 고분군 크기 : 면적 13,413㎡

무안 식영정

19.0 Km    18740     2024-06-11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호반로 562-15

식영정은 한호 임연(1589~1648) 선생이 1630년에 무안에 터를 잡은 이후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그의 호인 한호처럼 한가로움을 좋아한다는 취지로 그림자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식영정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영산강과 그 주변의 경관이 어우러져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으며, 임연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인 노촌 임상덕(1683~1710)이 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 임씨의 대를 이은 교류 공간이었다. 무안 이거와 경관, 정자 건립 등에 관해서는 1643년에 임연이 지은 복거록에 잘 나타나 있고 교류한 문인도 많다. 식영정은 인문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 정자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정자의 입지나 주변의 경관도 뛰어나다. 현재의 건물은 1900년대 초반에 중건한 건물로 나주 임씨 한호공파 종중에서 소유, 관리한다.

무안 도요지

무안 도요지

19.2 Km    17726     2023-03-29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몽탄로 940-1

* 고려후기 청자를 굽던 곳, 무안도요지 *

몽탄면 사천리와 몽강리에 위치한 도요지로 삼국시대부터 옹기와 질그릇 등을 만들어왔다. 양질의 고령토로 옹기, 질그릇만이 아니라 순수한 전통기법으로 백자, 분청사기 등을 재현하여 전국민속공예품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옛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또한 관광객이 직접 참여하여 도자기와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 무안도요지의 유물 및 가치 *

이 도요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로 왕실 및 관청 소용의 상감청자들이다. 특히 청자상감연판문잔대, 청자팔각접시 등은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유물문양은 상감기법으로, 구름·봉황·국화·모란·연꽃·버들·여의두문(如意頭文) 등이며, 간략하면서도 생동감과 해학스러운 자유로움이 돋보인다. 또한 이곳의 유물은 실생활 용기로서 당시의 문화와 경제상을 살펴볼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고려 후기의 청자형태나 문양의 변천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무안요 / 무안요전통분청사기전수관

무안요 / 무안요전통분청사기전수관

19.3 Km    10737     2023-04-18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몽탄로 940-1
061-452-3513

무안요는 수작업을 하고 있으며 전통 분청 중 고급 분청을 취급하고 있으며 분청사기, 생활자기, 옹기등을 판매하고 있다.

영광풍력발전단지

19.7 Km    2     2023-10-10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송암리

전국에서 손꼽히는 드라이브코스인 백수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풍력발전단지를 만나게 된다. 논밭 사이로 하얀 풍력발전기 총 78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 중 우리나라 최대 크기의 풍력발전기가 연구, 테스트 중이라고 한다. 드라이브를 하며 이국적인 풍력 발전단지를 즐기거나 잠시 들러 풍력발전기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며 압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영화 독전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광활한 논 사이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의 풍경은 환한 대낮에도 멋진 풍광이지만, 들판을 지나 끝자락에 위치한 백수분등소공원에서 즐기는 풍력단지의 풍광 또한 색다르다. 해 질 녘 노을 진 바닷가를 배경으로 풍력발전기가 서있는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일몰 풍경이다. 봄이면 도로 중간중간에 펼쳐진 노란 유채꽃 배경과 여름이 되면 초록의 논 배경과 해안가의 칠면초가 만들어내는 붉은 배경, 가을이면 황금빛 들녘과 어우러지는 하얀 풍력발전기는 그 색 대비만으로도 사진 찍기 좋은 포토존이 된다. 가까이에서 바라보면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가 회전하는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풍력발전기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된다. 차량을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구간에 멈춰 구경할 수 있으나 사진촬영을 하기 위해 논, 밭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행동은 삼가해야 한다.

삼거동 고인돌

삼거동 고인돌

19.7 Km    22039     2023-08-03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거동

삼거동 고인돌은 평동∼삼도간 도로와 함평∼나산간 도로의 삼각 지점에 위치하는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이 곳에는 반경 200m 이내의 구릉상에 2개군 49기가 분포되어 있다.고인돌의 형태는 덮개 돌과 덮개 돌을 받치는 굄돌, 무덤방으로 이루어지나 굄돌이 없는 경우도 있다. 굄돌의 유무와 높이에 따라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구분되는데, 이 곳 고인돌은 모두 굄돌이 낮거나 없는 남방식이다. 49기 중 굄돌이 없는 고인돌은 20여기이며 10여기는 무덤방이 노출되었다. 덮개돌의 형태는 장방형이 일부 있으나 대부분 원형이나 타원형이다.

가군은 23기로, 군집 형태는 동서 2열이며, 굄돌은 판석형이나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덮개돌은 2기만 100m~130m로 비교적 두꺼운 편이며, 나머지는 얇고 밑부분이 땅에 밀착되어 있다. 덮개돌의 장축 방향은 동서 방향이 대부분이다. 나군은 26기로 구릉 경사면에 남북 1열로 분포되어 있는데, 북두칠성의 배치와 비슷하다. 크기는 비교적 소형으로, 가군과 비교하여도 작은 편이다. 덮개돌은 땅에 밀착되어 있으며 장축은 모두 군집방향과 같은 남북이다. 그리고 마을 이름도 나군 고인돌에서 유래된 것 인듯하다.

삼거동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는 채석장이 없다. 그러므로 이곳의 고인돌을 만드는 데에 쓰인 석재는 외부에서 가져와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인돌 주변에 최영남이 경작하는 밭에는 유약이 없는 경질의 토기 조각들과 강돌이 흩어져 있다. 이로써 이곳이 선사인들의 취락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 정보]
지정종목 :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지정연도 : 1990년 11월 15일
시대 : 청동기시대
종류 : 고인돌

묘장영당

묘장영당

19.8 Km    1936     2023-12-13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동삼로1길 21

묘장영당은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 영당마을 중앙에 있으며, 묘장서원 또는 영당사라고도한다. 전라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묘장영당은 조선 초의 개국공신인 양도공 이천우(1354∼1417)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으로, 1616년에 건립되었다. 태종은 1416년 이천우가 퇴직할 때 그 공적을 치하하여 화공으로 하여금 이천우의 화상과 이응도를 그리게 했는데 그것이 후에 묘장영당을 건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후손들이 대대로 영정을 보관하다가 이천우의 증손인 부사맹 이효상이 담양으로부터 영광 묘량면 영양리 당산마을로 이주, 정착하면서 부조묘를 건립하고 영정과 함께 유품(포총교지, 이응도, 공신회맹축 등)을 보존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616년 향내 유림과 함께 뜻을 모아 현 소재지에 영당을 세우고 영정을 이안하여 배향하였다.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에 의해 사우는 철거되었고, 강당은 그대로 남아 서당으로서의 기능을 했으며 1919년에는 강당에 사립 영신학교를 설립하여 4년 과정의 학교를 운영하였다. 그 후 1928년 후학과 향내 유림들이 사우 복원을 추진하였고, 1934년에 이르러 옛 터에 사우를 중건하였다. 현재 묘정영당은 사당, 강당, 외삼문, 내삼문, 고직사로 구성되어 있다. 약간 경사진 지형을 2단으로 이용하여 첫째 단에 외삼문과 강당을, 둘째 단에는 내삼문과 사당을 배치하였다. 사당에는 [영당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내부에는 이천우 외에도 사우 중건 후에 추배 한 이응종, 이복원 등 전주 이씨 명현 5위가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