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대명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대명관

대명관

708.6M    2     2021-12-29

전라남도 목포시 유동로16번길 17
061-245-3642

20년 경력의 맛집으로 단일 메뉴만을 판매하고 있다.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는 꼬리곰탕 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꼬리곰탕이다.

목포시사

714.0M    24700     2024-05-22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로 165

유달산정문에서 조각공원 쪽으로 약 2㎞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목포시사는 본래 1890년에 하정 여규형 등이 건립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초기에는 유산정이라 부르며 문인들에게 시문을 가르치고 백일장 등을 주도하던 곳이었다. 이후 1920년에 무정 정만조가 재확장하여 유산사로 개명하고, 1932년에 중수하였으며, 1937년 목포시사를 발족하였다. 목포시사는 40.49m²(12.25평) 크기의 목조 기와로 되어 있다. 측면과 뒷면의 중방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벽돌로 쌓았으나, 1979년과 1984년 2회에 걸쳐 벽돌을 제거하고 보수하였다. 시사란 문사들이 서로 시문을 독려하고 자연과 시를 노래했던 풍류의 장소로, 목포시사는 시인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로하는 유림의 문학 결사 단체였다. 특히 한말의 유학자 정만조는 이곳에 머물며 퇴폐한 유풍을 바로잡고 학풍을 진작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한시의 명맥을 이어온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시사로 무정문집과 구한말의 전적, 창사이래 개최된 백일장에서의 입선작, 문인들의 원고를 모두 보존하고 있다.

요트 마리나 (목포)

758.3M    0     2024-07-30

전라남도 목포시 삼학로 88-56 (산정동)

개항 125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목포항에 있는 요트 마리나는 서남권 마리나 산업의 랜드마크이다. 목포 내항에 있는 요트마리나는 지정학적 이점으로 인해 인공 구조물 설치 없이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며, 접근성이 뛰어나다. 현재 60여 척 규모의 계류장을 비롯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인양기 등 서남권 최고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세한요트아카데미에서는 해양레저 활성화, 요트 저변인구 확대, 건전한 해양 문화 창출 및 수상례져 기구 전문 조정 인력 양성을 하고 있다. 분야별 이론과 실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중 요트 스쿨 운영 및 요트 승선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목포 요트 마리나는 해양레저 관광 휴식지로 주목받는 목포의 요트에 관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요트를 타면서 바다와 강과 호수가 어우러진 도시의 이국적인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삼학도공원와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 등이 인접해 있다.

신안뻘낙지

신안뻘낙지

781.8M    27287     2023-10-13

전라남도 목포시 청호로 16
061-243-8181

신안뻘낙지는 전라남도 목포시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목포연안 청정 갯벌에서 잡은 낙지만을 요리의 재료로 사용한다. 신안 뻘낙지는 씹히는 맛이 연하면서도 담백하고 자극성이 없으며 입안에 착 감기는 느낌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낙지는 말할 것도 없이 싱싱하고, 연포탕, 낙지회무침, 소고기 낙지탕탕이 등 다양한 건강메뉴가 준비되어 있다.

목포양동교회

805.0M    2     2024-04-04

전라남도 목포시 호남로 15 (양동)

양동교회는 선교사 유진벨이 목포에 설립한 교회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목포 3.1 만세운동의 중심지로 역사적인 공간이다. 의료 선교사 오웬의 진료 활동으로 교회는 성장하였고, 교인들이 힘을 합쳐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목포 지역의 부흥운동으로 교세가 확장된 교회는 1911년 석조 예배당을 완공하였다. 3.1 만세 운동 때 이경필 목사를 비롯한 교인들이 시위를 준비, 3월 21일 목포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나, 대부분 체포되었고 교인 서상술과 박상봉은 일제의 칼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 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박연세는 일제의 신사참배 정책에 항거하다 투옥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렇듯 양동교회는 일제에 항거한 산증인으로 목포의 항일정신을 보여주는 역사적 건물이다.

목포항구축제

목포항구축제

809.2M    100949     2024-09-11

전라남도 목포시 삼학로92번길 6 (산정동)
061-270-8441

*하기 대표 먹거리 정보는 전년도(2023년) 축제 내용으로, 2024년도 먹거리 정보는 업데이트 중에 있습니다.*

목포는 1897년 개항하여 교역, 물류 교통의 중심지로서 과거 전국 3대항, 6대 도시의 영광을 누리면서, 지역경제의 부흥을 주도했으며 현재에는 서남해안의 배후 중심 도시이다. 2024 목포항구축제는 설화가 공존하는 삼학도에서 항구 내음 가득한 목포항의 전통 파시(波市)를 전국에서 유일하게 축제로 재현하여 역사적인 가치를 널리 알린다. 또한 제철 수산물을 활용한 파시 경매, 경매 받은 수산물을 즉석해서 구워먹고 요리 해먹는 등 풍요로운 목포항의 낭만을 가득 담은 행사가 마련되어 있는 가을 축제이다.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

823.2M    1     2023-06-23

전라남도 목포시 해안로 182

목포연안여객선터미널은 목포시 항동에 위치한 여객터미널이다. 전라남도 서남권 도서지역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부지면적 14,413㎡, 건축면적 8,165.59㎡, 연면적 11,600.692㎡, 대합실 수용인원 1,738명의 규모며, 남해고속, 조양운수, 신진해운 등 7개의 선사가 있다.

목포항

목포항

823.2M    0     2023-12-28

전라남도 목포시 해안로 182

목포항은 부산 인천 등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항구이다. 1897년 10월 개항하여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항내수 면적 51㎢인 무역항이다. 내항-북항으로 나뉘어 있으며 기능별로 전문화되어 있다. 내항은 크게 여객 전용 항과 삼학도의 화물 전용 항으로 북항은 수산물 전용 항으로 개발되었다. 여객 전용 항은 국제여객터미널과 국내여객터미널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국제여객터미널은 제주도로 취항하는 여객선이 주로 다닌다. 현재 목포항에는 24개의 일반 항로와 11개의 보조항로가 개설되어 있다. 하루 수송 인원은 1만 3천여 명에 달하며 제주도와 홍도, 흑산도 등의 섬 지역으로 가는 관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신안의 섬 주민들에게는 식수와 더불어 삶에 필요한 생필품의 운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역사적으로 목포항은 한말 이권 싸움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선박이 몰려드는 거점이 되었으며 신학문과 신문물을 들여오는 선교사들의 통로와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난전시관

난전시관

827.0M    18754     2023-11-16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로 180

높지 않은 산이 우뚝 솟은 유달산 기슭에 자리한 난전시관과 자생식물원에는 난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보전하고 전승하려는 분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난전시관에는 우리나라 각지에서 자생하는 한국 난 39종을 비롯하여 동양란 152종, 서양란 97종 등 모두 288종에서 파생돼 나온 총 1,300여 점의 난이 전시되어 있다. 1982년부터 범시민적으로 유달산 공원화추진위원회가 발족되면서 세워진 이곳은 조각공원과 더불어 목포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휴식공간이다. 전시관에서는 단지 난을 전시하고 관람하는 것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난의 배양과 재배에 성공하여 저렴한 가격으로 육종분양도 하고 있다. 난도 관람하고 저렴한 가격에 분양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시관 주변에는 조각공원과 다도해를 조망하고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는 유달공원과 낙조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목포 오포대

830.3M    23229     2024-06-03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로 180

오포대는 유달산 입구 이순신 동상 남서쪽에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해 1909년 포대를 설치하였다. 당시의 오포대는 현재 유달산공원의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포는 주변에 모형으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1913년 신식 대포로 일본 오사카 포병 공장에서 구매하여 대체했고, 그전에 있는 구식 대포는 송도 신사에 보관하던 중 일본 강점기 후기에 오포대의 대포와 함께 일본 정부가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오포대 담당 직원이 정오에 맞춰 현재의 이충무공 동상 뒤에 있는 오포대에 올라가서 포탄 없이 포구에 화약과 신문지를 넣고 쏘아 굉음과 함께 목포 상공에 휴지가 흩어지면, 시민들은 ‘오포 텄다. 점심 먹자’라는 신호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말기 일본이 전쟁 수행을 위한 공출로 오포를 걷어가 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