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동 제철유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금곡동 제철유적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금곡동 제철유적

금곡동 제철유적

5.7Km    2025-08-08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광주광역시 금곡동제철유적은 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이 나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곡동제철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금곡동제철유적 일대는 산화철이 포함된 미문상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철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 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 철기 제작의 전 공정을 보여 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 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금곡동제철유적의 발굴을 통해 김덕령의 의병 활동 과정에서 무기 제조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적지에 이르려면 무등산 의병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대가

대가

5.7Km    2025-07-17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로 619

대가는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에 위치한 생선구이 전문점이다. 대가의 생선은 비금도에서 채취한 천연 소금과 댓잎 분말, 매실즙, 한약재 등을 첨가하여 24시간 숙성시켜 조리한다. 돼지 떡갈비도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사용하고 댓잎 분말과 매실즙, 인삼이 들어가 그 맛의 깊이가 남다르다. 밥은 영양 솥 밥과 대통 밥 중 고를 수 있으며, 고등어, 삼치, 조기, 갈치, 가자미, 떡갈비 중 입맛에 맞게 고루 즐길 수 있다. 한 상 가득 반찬부터 건강을 생각한 주인의 정성이 느껴지는 식탁을 만날 수 있다. 김치도 배추김치, 묵은지, 상추 무침, 겉절이, 열무김치 골고루 나온다.

화담사

화담사

5.7Km    2024-09-12

광주광역시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여 충절을 지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희와 그의 아들 정초, 손자 정수충 3대와 정오도·민제장 등 5위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화담사가 자리잡은 곳은 예로부터 향기롭고 온화한 꽃들이 많다고 하여 화담이라 불렀다. 하동 정씨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약 500여 년 전에 보성군수를 역임한 정화가 살기 시작하면서였고, 그 후 계속하여 후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 마을을 화정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화담사의 [화]와 송정의 [정]을 합쳐서 이름을 지은 까닭이다. 이곳의 건물 배치는 제향 구역과 강학 구역에 높이 차이를 두어서 조성한 전학후묘 양식으로 가장 뒤에 화담사를 안치하고 그 앞에 내삼문인 양양문을 두었다. 이곳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는 중간에 동재와 서재를 두고 그 밑에 외인문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 화담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앞 뒤에 마루가 있는 맞배지붕이다. 앞면의 마루는 개방되어 제향의식을 편리하게 한 사당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앞부분의 문은 굽널을 둔 빗살문이며 겹처마이다. 평면구성은 앞에는 원형기둥을 세우고 중앙부는 사각기둥을 세워 앞마루가 퇴마루를 구성하지 않는 개방형이다. 청지재와 열호재는 동재와 서재가 같은 양식으로 건립된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 지붕이다. 평면 구성은 앞에 마루를 두고 모두 온돌방을 놓았다. 화담사 경내의 아름드리 배롱나무가 아름다워 볼만하며 음력 2월에 춘향제를 봉향한다.

환벽당 ·조대

환벽당 ·조대

5.9Km    2025-03-20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

담양 가사문화권역에 있는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충효 동쪽 높다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벽간당(碧澗堂)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遺書石綠)에 기록되어 있다. 환벽당은 홍문관 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성주를 역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촌 김윤제(1501~1572)가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인데, 송강 정철, 사하당 김성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다. 환벽당 인근에 위치한 용소는 창계천의 깊은 물 웅덩이를 말한다. 이곳은 송강 정철에 대한 전설이 얽힌 곳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환벽당에서 사촌이 낮잠을 자는데 꿈에 환벽 당 앞 용소에서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이를 괴이히 여겨 하인을 시켜 살펴보라 하였는데 어린 동자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동자가 바로 집안이 역적으로 몰려 피신하는 길에 잠시 쉬고 있던 송강 정철이다. 사촌이 송강을 불러 문답하는 중에 그 영특함에 놀라 자기 슬하에 두고 학문을 닦게 하여 송 강 나이 17세에 그를 외손녀 사위로 삼고 정철의 뒷바라지를 했다. 용소 옆에는 송강이 이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았다는 조대가 있다.

환벽당

환벽당

5.9Km    2025-04-01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룬다라는 의미이다. 환벽당은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 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이 지었으며, 벽간당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의 유서석록에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을 방으로 하여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깐 변형된 형식이다.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후대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제액이 걸려있고, 석천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환벽당에 관한 시는 정철이 지은 2수가 있는데, 송강속집과 광주목지에 실려 있다. 환벽당에는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김윤제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다가 조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보니 미역을 감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외손녀를 이 소년에게 시집보냈는데, 이 소년이 뒤에 정치가로서 또한 문호로서 이름을 날린 정철이었다 한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와 용소가 있다. 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 곳에는 식영정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이 있다. 인근에는 독수정과 소쇄원이 자리 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다. * 사촌 김윤제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 겸 춘추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서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들풀

5.9Km    2024-12-03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분향용대길 3-6
061-381-7370

담양 고서면에 산채정식으로 소문난 집이 바로 들풀이다. 이 집의 특징은 기존 한정식의 부담스러운 가격과 양 대신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친환경 재료는 물론이고 주인장의 정성과 함께 계절마다 절기에 따라 맛과 멋을 담아낸 음식들이 남도의 맛 그대로다.

약사암(광주)

약사암(광주)

5.9Km    2025-07-24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160번길 89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새인봉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도윤(道允)이 847년(문성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당시에는 인왕사(人王寺)라고 했다가, 고려 예종(1105~1122) 때 국사 혜조(慧照)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암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인 1856년(철종 7) 3월에 성암(性庵)이 약사전을 중수하였고, 1905년 9월에 선주(善周)가 관청의 도움과 시주로 중건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지 석담(石潭)이 법당과 요사채 등을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사암에 보존되어 있는 유물로 석조여래좌상(보물)과 3층석탑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유물이 9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이 절의 역사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현재 약사암에는 대웅전, 운림당, 운림서원, 강원, 일주문 등이 있으나, 모두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의 건물이다. 대웅전에는 독성탱화·칠성탱화·산신탱화·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는데 독성탱화는 1912년에 그린 것이며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도 이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중탱화는 근래의 것이다.

무등산 광주화강암

무등산 광주화강암

5.9Km    2025-04-30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 광주화강암은 중생대 쥐라기에 지하에서 마그마가 굳어져 형성된 화강암이 오랜 시간 침식을 받아 노출된 노두이다. 이 지역의 화강암은 중생대 쥐라기의 화강암과 석영섬록암, 백악기의 석영반암과 미문상화강암이 있다. 쥐라기의 화강암은 흑운모화강암과 화강섬록암으로 구성되며 이 둘을 묶어 광주화강암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지각변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단층과 단층활면이 관찰된다.

담양 식영정

담양 식영정

5.9Km    2025-11-18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가사문학로 859

식영정은 원래 서하당 김성원이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각이라 전하며, 식영정이라는 이름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으로 임억령이 지었다. 식영정 바로 옆에는 김성원이 자신의 호를 따서 서하당이라고 이름 붙인 또 다른 정자를 지었다. 서하당유고의 기록에 의하면 김성원이 36세 되던 해 식영정과 서하당이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이라 불렀는데, 이들이 성산의 경치 좋은 20곳을 택하여 20수씩 모두 80수의 식영정이십영을 지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 식영정이십영은 후에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고, 정철은 담양에서 성산별곡을 비롯해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지었다. 식영정과 도보 3분 거리에 한국가사문학관과 시가 문화유적지가 있으며, 인근 관광지로는 소쇄원이 있다.

광주광역시국제양궁장

광주광역시국제양궁장

6.0Km    2025-04-07

광주광역시 남구 회재로 1187 (주월동)

국제 규모의 양궁장으로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양궁 종목 운영을 위해 신축하였다. 광주광역시 출신의 기보배 선수의 이름을 따 기보배런던올림픽제패기념양궁장으로도 불린다. 국제 규모의 경기장 시설과 기보배, 최미선 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평소 연습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국내외의 많은 선수들의 전지훈련지로 각광받고 있다. 2015년부터 광주 시민에게 개방하여 양궁 체험 교실을 운영하는 등 생활체육 장소로 자리매김하였다. 또한 2016년부터 광주광역시 거점 스포츠클럽 종목으로 선정되어 유소년반, 성인반, 주부반을 운영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는 관리사무소와 광주광역시양궁협회 사무실, 임대 사무실이 있으며 선수 훈련장과 실내 연습장이 있다. 2층에는 관람석, 화장실, 주차장 140면이 들어서 있다. 관람석은 1,085석이며 양궁장 사대 뒤편에 있다. 양궁장 사대에는 최대 64명의 선수가 동시에 서서 경기를 펼칠 수 있다. 활시위 모양을 본뜬 외관 디자인이 특징이며, 지열을 활용해 냉난방하는 친환경 시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