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Km 2024-01-22
전라남도 담양군 죽향대로 723 담양애꽃
고풍스러운 분위기, 부담 없는 가격, 푸짐한 양으로 상견례 장소로도 인기가 좋은 담양애꽃은 퓨전 한정식 전문 음식점이다. 국내산만 사용하는 담양애꽃의 반반정식은 한우 떡갈비와 돼지 떡갈비가 하나씩 나와 각각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식전에 나오는 들깨죽은 수제비 사리가 같이 나와 구수한 들깨수제비로 속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한정식 맛집답게 도라지오이무침, 가지튀김샐러드, 호박전, 갓보리물 백김치 등 입맛을 돋우는 밑반찬이 정갈하다. 네이버 예약은 평일만 가능하고 주말 예약은 전화로만 가능하다. 죽화경, 면앙정 등이 주변에 있어 연계 관광하기 수월하다.
14.8Km 2024-10-10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진원3길 60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장성 진원리 오층석탑은 진원리 뒷산 탑동이라는 곳에 있던 탑으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몰래 빼내가려던 것을 주민들의 반대로 옮기지 못해 현재의 터에 자리 잡게 되었다.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며, 4층 이상은 잃어버리고 없다.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을 옮겨 세우면서 각 부재가 제대로 짜 맞춰지지 않아 탑신이 반듯하지 못하다. 또한 탑 전체가 가늘고 길어 안정감이 없는데,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14.9Km 2025-03-19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충의로 409
충의사는 임진왜란 당시 호남의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삼장사의 일원으로 순국한 최경회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우이다. 충의사 내에 최경회의 부실 논개부인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영정각(의암 영각)이 함께 건립되어 있다. 최경회의 자는 선우, 호는 삼계, 당호는 일휴당이며 본관은 해주로서 화순에서 태어났다. 명종 22년(1567)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을 시작으로 사헌부와 형조 외에도 호남의 여러 지방의 관리로 근무하였다. 1591년 어머니 상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에서 시묘하고 있을 때,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청을 설치하고 수천의 의병을 일으켜 전라우도 의병장이 되어 상복 차림으로 북상하여 무주 우지치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선조 26년(1593) 6월 왜군이 다시 진주성을 공격하였을 때 창의사 김천일 등과 함께 진주성을 지켰으나 9일 만에 함락되고 남강에 투신, 생을 마감하였다. 시호는 충의이다. 충의사 일휴당 기념관은 충의공 최경회의 유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왜적으로부터 노획한 언월도(복제품)를 비롯하여 각종 교지와 기병장면도, 서사장면도 등 많은 유품이 보관되어 있다.
14.9Km 2025-03-31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백천로 236-1
환산정은 화순군 서성저수지 안에 위치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 풍경이 산수가 뛰어나고, 앞쪽에 펼쳐진 서암산의 적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1965년 서성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상류 한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서성저수지가 만조에 가까울수록 환산정의 비경은 빛을 발한다고 한다. 환산정은 백천 류함이 17세 전반에 축조한 누정이다.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류함은 1637년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진격해 갔다. 그런데 인조가 강화를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해산한 후, 이곳으로 내려와 환산정을 짓고 은거하였다고 한다. 17세기 처음 정자가 지어질 때는 방 한 칸의 초가였다. 이후 퇴락한 것을 1896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또한, 원래 서성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담장을 치고 솟을대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성서수지로 물이 잠기면서 담장을 없어지고 솟을대문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환산정 현판이 안쪽 창방에 걸려 있으며, 원운 15개의 편액도 함께 걸려 있다. 조선시대 이 지역 정자의 전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건물이다.
14.9Km 2025-03-19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은행나무길 7
화순 이서면의 은행나무는 수령은 500여 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27m, 가슴높이의 둘레가 9.12m, 뿌리 근처 둘레가 11.2m로 야사리 마을의 한구석에 있다. 줄기 중심은 동굴처럼 뚫어졌으나 나무에서 싹이 나와 자라고 있다. 가지 사이에는 혹 또는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유주나무가 아래를 향해 달려있다. 조선 성종때 이곳에 마을이 들어서면서 심은 것이라고 하며, 신통력이 있어 국운이 융성하면 나라의 화평을 알리고, 때로는 우는 소리를 내어 전란과 나라의 불운을 알렸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새해의 풍년과 행운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곳 야사리 마을이 형성되면서 심었다고 하여 마을의 수호신으로 보호하고 있다.
15.0Km 2025-03-15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옥리길 14-21
남도 제일의 종합 온천 레저 타운 금호리조트 화순아쿠아나는 신경통, 아토피성 피부염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알칼리성 리튬 성분 온천수로 이루어진 대온천탕, 아쿠아풀, 야외수영장 노천탕이 있다. 또한 아늑한 콘도 시설 및 다양한 휴양문화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15.1Km 2024-11-04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백아로 3114
061-373-5482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망향정에서 동복호(同福湖) 조성으로 고향이 수몰된 실향민들과 지역 주민들, 관광객 등이 참석하여 수려한 자연 경관을 감상하고 고향에 대한 사랑을 서로 나누는 축제이다. 적벽문화축제는 1985년 10월에 시작되었다. 매년 10월경 수려한 경관인 이서 적벽의 절경을 만끽하며 화순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이날 적벽문화축제는 평상시 유료로 운영되는 적벽투어가 행사기간동안 무료로 운영되며 적벽을 걸어서 들어갈수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5.1Km 2024-07-31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백아로 3109
규남 박물관은 화순군 백아로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인 [하백원의 만국전도와 동국지도]를 비롯하여 서화, 간찰, 전적, 인장 등 94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규남 하백원 선생은 여암 신경준, 존재 위백규, 이재 황윤식과 함께 조선 후기 호남의 4대 실학자 중 한 분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서 태어나 벼슬을 하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일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자승차, 자명종, 계영배, 방적기 등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고, 만국지도, 동국지도를 그리는 등 실용 학문을 탐구하며 지냈다. 이곳에는 규남 선생님과 그의 선 후대 인물, 친지들의 편지 등 여러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 겨울에는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개관하지 않으며 하백원의 실학에 대해 알고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한옥 건축물이 예쁘고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궁금증을 갖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에는 상설 전시관과 특별 전시관이 있으며, 규남 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인 영당에서는 매년 4월 규남제를 봉행하고 있다. 화순을 여행하며 들러볼 만한 곳이다.
15.2Km 2025-03-21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용동길 166
오남제 건립은 행주기씨 락남선조인 덕성군 물제기진을 제향 하는 제각으로 1560년에 건립했고, 물제기진는 고봉 기대승의 부친이며 기앙명현기준의 중형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골기와 8작지붕이며 건물내부 우측에 ‘금송유사 공사원 유사임자’ 3월 29일이란 현판내용과 제각정면에 고봉선생과정기훈이란 제하의 기문이 걸려있다. 내부는 대청마루로 되어 있고, 대문은 소슬대문으로 대문 좌우측에 각 1칸씩 창고로 쓰이고 있다. 담장은 토담으로 되어 있고, 제각 우측에 행랑채가 있어 관리인이 살고 있으며, 건물의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건축 과제로서의 가치가 높다.
15.3Km 2025-03-19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고산로 68
고산서원은 퇴계와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6대가 중 1인으로 추앙받는 노사 기정진이 고종 15년(1878)에 정사를 지어 담대헌이라 하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후손들이 1924년 중건하였으며, 1927년에 고산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노사 기정진은 19세기 전라도 지역뿐만 아니라 멀리 제주까지 전국적인 후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사선생연원록]이라는 제자록에 의하면 글을 배운 제자가 600여 명에 이르고, 그들의 제자들까지 합쳐 6,000여 명에 이르는 조선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대한단이 형성되었다. 또한, 노사의 제자들은 구한말 의병의 본류가 되기도 하였다. 고산서원은 문화유적 보호차원에서 완전히 개방하지 않고 있다.